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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빤스 한장 걸친 내 마라톤 인생 이제 35㎞ 통과”

황성주털털모발이식 2007. 10. 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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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을 달렸지만, 마라톤은 고통스럽다. 이봉주가 공주에서 도로 훈련을 하다가 더위를 이기기 위해 물을 머리에 붓고 있다. /공주=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 사진제공 삼성전자육상단



[Why]“빤스 한장 걸친 내 마라톤 인생 이제 35㎞ 통과" 인터뷰 중에서
[출처: 조선일보]

‘국민 마라토너’이봉주(37·삼성전자).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봉달이'라는 별명을 더 좋아한다.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던 이봉주는 지난 3월 다시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막판 짜릿한 역전극을 펼치며 우승을 했다.

이봉주는 추석을 앞두고 충남 공주에서 훈련 중이었다. 오인환 감독과 함께 마라톤 인생을 건 승부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는 10월7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시카고마라톤이 무대다.
추석 당일에 차례만 지낸 뒤 28일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금강변 도로를 오가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이봉주를 만났다.

―턱수염을 또 기르는군요.

“네. 출전할 경기가 잡히고 훈련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턱수염을 기릅니다. 콧수염은 안 길러요. 1997년쯤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이번에도 지난 7월부터 기르고 있습니다. 손질은 해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엄청 지저분해지거든요. 뭐랄까, 나 자신에 대한 암시라고 할까요? 턱수염을 다듬으면서 대회가 임박했다는 걸 다시 마음에 새기고 각오를 다집니다. 도 닦는 심정이지요.”

―모발이식 수술도 받았지요?

“네, 2002년에 2000개 심었고, 2003년에 추가로 2004개를 심었지요. 그때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라는 의미에서 의사선생님께서 그렇게 해주셨는데,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죠.”(실제 이봉주씨가 모발이식한 시기는 2003년과 2005년이다.)

―땀이 너무 흘러 내려서 머리를 심었던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때 제가 30대 중반이었는데,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서 늙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머리카락을 심은 거죠. 지금 훨씬 젊어 보이지 않나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조금이라도 해결한다는 건 심리적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사진을 볼 때면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그럼 예전에 쌍꺼풀 수술했던 건…. 그때는 땀이 눈으로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것도 사실은 그냥 제가 하고 싶었어요. 자꾸만 눈꺼풀이 처지면서 작은 눈이 점점 더 작아 보였거든요. 땀 때문에 수술했다는 얘기가 나온 건 주위에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그런 거였죠.”

―마라톤이 힘든 운동이잖아요. 왜 마라톤을 하게 됐나요?

“저는 천안에서 태어났어요. 아버님께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먹고살기 빠듯했죠. 2남2녀 중 제가 막내입니다. 큰 누나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도시로 일하러 나가야 했어요. 전 공부에는 별 취미는 없었고…. 고등학교 진학한 뒤 육상을 시작했죠. 다른 운동은 돈이 많이 들겠더라고요. 형이 레슬링을 하다가 부모님 반대로 중간에 포기했어요.

운동하려면 이런저런 돈이 들어가는데, 그걸 감당할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육상 선수들을 보니, ‘빤쓰(팬티)’ 하나 입고 뛰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육상을 시작했죠. 단거리보다는 장거리가 더 성적이 좋았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야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하게 됐습니다.”

이봉주는 1990년 전국체육대회에서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소화했다. “앞사람만 보고 정신없이 뛰었다”는 그는 2등을 차지했다. 이후 17년 동안 풀코스에 37번이나 도전해 35번을 완주했다. 성실함과 인내. 그의 천성은 마라톤에 꼭 맞았다. 20세 이후 한 번도 체중이 56~57㎏을 벗어난 적이 없다. 마라톤 훈련과 대회에서 뛴 거리만 합쳐도 15만2000㎞가 넘는다. 지구를 3.8바퀴(한 바퀴는 약 4만㎞) 이상 달린 셈이다. 라이벌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5년 동안 8회의 풀코스 완주를 기록한 뒤 은퇴했다.

―정말 마라톤을 오래했지요. 곧 마흔인데, 자신의 인생을 마라톤에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에 와 있다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지금 35㎞ 지점쯤을 달리고 있는 셈일 겁니다. 이제 힘들고 중요한 고비는 넘어섰다고 봐야죠. 마무리가 중요할 것 같아요.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라톤 결과가 달라지듯이 제 인생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겠죠.”

―일찌감치 지도자의 길로 나선 황영조 감독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친구 사이라고 하던데.

“우리 둘은 걸어온 길이 같았죠. 나이도 동갑이고, 고등학교 때 1년씩 꿇었던 것도 같아요. 하지만, 영조가 먼저 꽃을 피웠죠. 그 친구는 정말 타고난 마라토너라고 생각해요. 영조 덕분에 지금 아내(김미순 씨)도 만났지요. 영조랑 삼척에 놀러 갔을 때 친구의 친구를 데리고 나왔는데, 지금 애들 엄마였죠. 첫눈에 반했어요. 음…. 영조는 일찍 운동을 그만두면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전 아직도 선수 생활을 하고 있죠.
사회에서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제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이봉주 선수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힘을 얻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제가 지난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역전 우승을 한 다음에 어떤 어르신께서 제게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나같이 힘없는 늙은이는 그냥 조용히 살다가 죽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전성기가 지났다고 생각했던 이봉주 선수가 우승하는 걸 보고 나도 무슨 일이든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고맙다’ 이런 내용이었지요. 저도 그 편지를 보고 ‘아, 이젠 나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마라톤을 할 생각입니까?

“우선 오는 10월 시카고마라톤에서 제가 갖고 있는 한국최고기록(2시간7분20초)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목표는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거죠. 제가 올림픽 금메달을 못 걸어봤거든요.(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베이징올림픽이 은퇴 경기가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올림픽을 뛰고 나서 내년 가을쯤에 열리는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뛰고 싶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대회 공식 명칭에 ‘이봉주 은퇴 경기’라는 게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만한 자격을 얻으려면 몇 번 안 남은 대회에서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드려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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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21/20070921013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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